축음기
에디슨과 벨의 끊임없는 경쟁 | |
이름 | 틴포일 축음기와 그래포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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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축음기 |
연대 | 1890년 ~ 1900년 |
음성 파일 |
1877년 7월, 전화기의 수화기를 개량하는 작업에 한참 골몰해있던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수화기의 진동판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목소리를 저절로 완벽하게 저장했다가 다시 재생시키는 장치”를 만들어 냈어요.
에디슨은 이 기구에 ‘포노그래프 (Phonograph)’, 즉 ‘축음기’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목소리’라는 뜻의 그리스어 ‘포노(Phone)’와 ‘글씨(쓰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그래포(Grapho)’가 결합된 것이랍니다. 이 때의 축음기를 양철 포일을 녹음 매체로 사용하는 축음기라는 의미의 ‘틴포일 축음기’라고 부르지요.
에디슨은 그의 축음기를 순전히 사무용 기기 정도로만 취급했을 뿐, 이것이 훗날 음악을 녹음하고 재생하여 가정에서의 오락을 제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1878년 1월, 에디슨은 몇몇 투자자들을 모아 에디슨 스피킹 포노그래프 회사(Edison Speaking Phonograph Company)를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틴포일 축음기를 이용한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하지만 에디슨의 틴포일 축음기는 너무나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발명에 있어서 에디슨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다름 아닌 전화기의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었어요. 벨은 볼타 연구소(Volta Laboratory Associations)를 설립하고 자신의 사촌인 화학자 치체스터 벨(Chichester Bell)과 함께 연구한 끝에 마침내 1885년 말, ‘그래포폰(Graphophone)’이라는 기계를 만들어냈어요. 그래포폰은 에디슨의 틴포일 축음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크게 개량한 것이었지요. 이후, 볼타 그래포폰 회사(Volta Graphophone Company)를 설립한 벨은 에디슨과 마찬가지로 축음기 시장에 뛰어들었답니다.
그래포폰이 결정적으로 에디슨의 틴포일 축음기와 달랐던 점은 바로 그 녹음 매체라 할 수 있어요. 일회용에 불과했던 양철 포일을 사용하는 틴포일 축음기와는 달리, 그래포폰은 오조케라이트(Ozokerite, 광물 왁스)를 입힌 길쭉한 종이 원통(실린더)을 기계에 달린 원통형의 심봉(心棒)에 별도로 끼워 녹음과 재생을 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비로소 기계의 일부분이 아닌, 기계와 분리된 개체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음반’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던 250달러라는 가격과, 결코 쉽지 않았던 작동방법 등등 여러 가지 악재로 인해 판매에 큰 고전을 겪게 되었던 벨은 궁여지책으로 에디슨을 찾아가 자신들과 합작을 하자는 제안까지 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여러 분야에서 벨과 피 말리는 경쟁에 휘말려있던 에디슨은 단칼에 이 제안을 거절해 버렸답니다.
*사진 제목 및 출처
1. 틴포일 축음기 스케치 원본/미국 뉴저지 주 웨스트오렌지 에디슨 국립 사적지(Edison National Historic Site) 소장
2. 에디슨 틴포일 축음기 1호(복제품)/http://www.edisontinfoil.com/tinfoils.htm
3.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지 1878년 3월 30일자/미국 국회도서관 The Library of Congress 웹사이트
4. 그래포폰 용 오조케라이트 실린더/영국 런던 국립과학박물관(National Science Museum of London) 소장
5. 그래포폰 1호기/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 국립 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at Smithsonian)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