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
내장형 축음기와 탁상형 축음기 | |
이름 | 1910년대 다양한 형태의 가정용 축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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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축음기 |
연대 | 1901년 ~ 1925년 |
음성 파일 |
1910년대에 들어섰을 때, 디스크 축음기는 전 세계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주도권을 선점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시기에 발매되기 시작한 양면 디스크 레코드는 음반 시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어요. 이제 소비자들은 그 전과 같은 가격으로 두곡의 노래가 든 레코드를 구입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여전히 하나에 한곡을 겨우 담아낼 수 있었던 실린더에 비해 큰 장점으로 작용하였지요.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유럽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당시의 축음기 시장으로도 이어졌어요. 이 시기에는 영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음반과 축음기의 제작 및 판매가 크게 위축되었어요.
1차 대전으로 인해 전쟁 특수를 맞이한 미국에서는 축음기와 음반 시장이 몇 배 이상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한 예로 빅터사의 경우 1910년 590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던 것에 비해, 전쟁이 끝난 1919년에는 그 다섯 배가 넘는 3080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을 정도였지요. 당연히 축음기의 판매 역시 급등했고, 가격대 역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낮아졌답니다.
1910년대 초에 이르자 미국 시장에서는 나팔형 축음기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가구형 (Floor) 축음기’라고 불리는 캐비닛 형태의 대형 내장형 축음기와 함께 이른바 ‘탁상형(卓上形, Table-top)’ 축음기라고 알려진 작은 축음기들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어요.
탁상형 축음기는 내장형 축음기의 일종으로, 기존의 대형 내장형 축음기에서 레코드를 수납할 수 있는 캐비닛 부분을 빼고 축음기의 기계와 내장 나팔 부분만 만들어 판 것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한편, 191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수많은 군소 축음기 제조사들이 생겨났어요. 이러한 회사들은 초기에는 베를리너와 존슨의 특허 때문에 일반적인 수평녹음 디스크 대신 수직녹음 디스크와 축음기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요. 그러나 1919년 말, 그때까지 빅터사와 콜럼비아사의 가장 큰 자산 가운데 하나였던 베를리너와 존슨의 디스크 관련 특허 시효가 모두 완료되면서, 이들 군소 업체들은 자유롭게 디스크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답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축음기 시장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진 제목 및 출처
1. 콜럼비아 양면 디스크 레코드 광고. 1908년 5월
2. 제 1차 세계대전 중 빅터 사의 탁상형 축음기를 듣는 미국 공병부대원들/한국 개인소장
3. 1919년 무렵 미국 뉴욕의 한 축음기 및 음반 가게 모습/미국 국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소장
4. 빅터 빅트롤라 6형/미국 개인소장
5. 빅터 빅트롤라 9형/호주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