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남해안 바닷길과 주변을 살핀 광양 마로산성 | |
이름 | 광양 마로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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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백제 |
분류 | 석성 |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산 78 외 |
일반설명
광양시 광양읍 북쪽의 해발 208.9m의 마로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말안장과 같이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마안봉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산성에 올라서면 광양만을 비롯한 남해안의 바닷길과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백제가 공주(웅진)에 도읍을 두었던 6세기 무렵에 마로현을 다스리기 위한 중심성곽(치소)으로 처음 쌓았으며, 통일신라시대에도 고을 이름을 희양현으로 바꾸어 9~10세기까지 사용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550m, 너비 5.5m이며 면적은 약 18,945㎡이다. 부속시설물로는 백제~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 17동, 문지 3개소, 돌로 쌓은 물을 모아두는 시설인 석축집수정 5개소, 우물 2개소, 점토로 만든 물을 모아두는 시설인 점토집수정 6개소, 치 2개소, 수구 3개소, 구덩이 30여기 등의 많은 유구와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류 등의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축조과학
마로산성을 쌓은 백제시대 장인들 역시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먼저 성벽의 기초는 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흙으로 된 지층인 석비레층을 턱을 남겨두고 계단식으로 파내 성돌이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한 후에 쌓아 올렸다. 이러한 계단식 삭토법은 성벽의 무게를 분산하고 빗물이나 지하수가 성벽에 스며들어 성벽 전체가 앞으로 미끄러져 붕괴되는 슬라이딩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성벽은 직사각형이나 부정형으로 떼어 낸 얇은 할석, 얇고 길쭉한 판자 모양의 판석, 옥수수 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잔돌로 고정시켜 가며 쌓아올렸다. 이것은 성돌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성벽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기하는 한편, 성벽 위로부터 스며든 빗물이 성돌 사이의 틈으로 자연스럽게 새어나가게 함으로서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축성기술이다.
동·서·남쪽의 3개 성문은 백제시대에는 성문의 양쪽 벽을 따라 나무기둥을 5개씩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성문의 통로 위에 별도의 덮개를 설치하지 않은 성문인 개거식성문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성벽보다 약간 낮게 쌓아 사다리를 통해 출입을 하는 다락문식으로 성문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방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주었다. 마로산성의 이러한 성문들은 시대에 따른 성문의 변화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안의 물은 가장 낮은 골짜기 윗부분에 우물과 물을 모으는 집수시설을 만들어 저장하여 식수와 불을 끄는 소화용 등으로 사용하고, 넘치는 물은 배수로와 성벽에 설치한 수구를 통해 성벽 바깥으로 흘러 나가도록 처리하였다. 수구의 바닥은 계단식으로 처리하여 유속을 줄이는 한편, 양쪽의 벽과 덮개돌을 일반 성돌 보다 큰 석재를 사용함으로서 성벽의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또한 성벽 밑 부분에 직접 물이 닿지 않도록 일정 높이에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를 마련함으로써 성벽을 보호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