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이름 | 서울 풍납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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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백제 |
분류 | 토성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72-1외 |
일반설명
풍납토성(사적 제 11호)은 한강변에 축조된 평지토성으로 한성백제기의 도성인 위례성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을축년(1925년) 대홍수 때, 청동제초두와 과대 금구 등 중요유물이 출토되면서 한때 주목받았다. 하지만 계속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풍납토성은 1997년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유물이 쏟아지면서 그 위용이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이른 시기의 백제유물들과 집터들이 확인되고 성벽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중요한 성과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때문에, 현재는 가장 유력한 한성백제기의 위례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풍납토성은 순수 토성으로만 쌓아 졌으며, 성벽은 동쪽으로 치우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 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 전체 길이가 3.5k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을축년에 유실된 서벽을 제외하고 2.1km정도가 남아있다. 풍납동 토성은 기원 전후에 쌓여지기 시작하여 늦어도 서기 200년경에는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발표되었다.
축조과학
성벽은 흙을 다져서 차곡차곡 쌓는 판축기법으로 쌓아졌는데, 우선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한 후 그 위에 개흙을 깔아 기초를 다지고, 폭 7m, 높이 5m정도의 흙으로 된 사다리꼴 성벽(토루)을 쌓았다. 그 안 쪽으로 모래와 점토 등을 사용한 판축토루(흙을 다져서 만든 성벽)를 비스듬하게 덧붙여 쌓아 나아갔다. 그 중 마지막 판축토루 위에는 강가에서 구해온 돌을 3단으로 올리고 그 안쪽은 잘게 깬 돌로 마감했다. 이것은 흑과 모래가 흘러내리거나 안쪽으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배수의 기능을 함께 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풍납토성 성벽을 모두 쌓으려면 대략 15톤 덤프트럭(8㎥) 168,000대를 움직여야 하는 막대한 분량이다. 성을 짓기 위해 백제의 장정들을 하루 2천 명씩 동원했다고 계산할 경우, 풍납동 토성을 다 쌓으려면 1,120일(3년)이 걸리게 된다. 이 계산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을 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계절과 날씨를 감안하면 대략 4~6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판축은 접착력이 강한 서로 다른 종류의 흙을 교대로 부으면서 절굿공이로 꾹꾹 눌러 다져주면 흙이 서로 달라붙어 지금의 콘크리트와 같이 단단해 지는 기법이다. 이렇게 쌓은 성벽은 매우 견고하여 천 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넘게 견뎌 지금까지도 잘 남아있다. 다시 말해, 판축기법은 고대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