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해자(海子)로 성벽 외곽을 방어한 언양읍성 | |
이름 | 울산 언양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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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분류 | 석성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
일반설명
언양읍성(사적 제 153호)은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의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석축성으로 네모반듯한 평지성이다. 둘레 1,559.7m으로 성벽의 현재 남아 있는 최고 높이는 4.85m이다. 읍성의 동서남북 성벽 중앙에는 옹성(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을 두른 성문이 배치되었다. 또한 각 성문의 좌우와 성벽이 꺾이는 모서리마다 성벽에서 돌출되게 쌓아 성 밑에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설인 7m~8m×8m~10.4m 규모의 사각형 치성을 배치하고 성벽 바깥에는 해자와 뾰족한 말뚝인 목익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조선시대 평지읍성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 성벽 둘레 1,427척, 높이 8척 규모의 토성으로 축조하였으며 군창이 있고 웅덩이 4곳과 우물이 2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성은 연산군 6년(1500년) 당시 현감이었던 이담룡이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이다. 고쳐 쌓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더 넓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읍성 내부에는 각종 관아시설이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 태종 11년(1411년)의 기록에 의하면 언양 객사가 불에 타 수리하였다는 내용이 보이며, 동헌은 성종 21년(1490년) 6월 7일자 기록에 의하면 언양현 관아가 불에 타버렸으며, 명종 4년(1549년)에는 언양의 관사를 신축한 내용이 적혀 있다.
축조과학
성벽의 기초는 우선 생토층에 막돌이나 자갈돌을 깔아 지반을 다졌는데 북쪽 성벽의 경우 생토층에서 나무말목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되어 성벽의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외벽의 판돌 안쪽의 뒤채움 돌은 장대석을 길이방향으로 배치하여 면석이 무너져도 성벽 자체는 유지될 수 있도록 쌓았다. 내벽의 성 안쪽과 성벽 윗부분을 흙으로 덮어 마무리하였는데 이는 세종 20년(1438년)에 반포된 석성 축조에 관한 〈축성신도〉의 전반적인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며, 빗물로 인한 성벽 유실방지와 유사시 성벽 위쪽으로 병사들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성벽의 석축 너비는 5.5m내외로 그 안쪽 너비 1.5m의 흙으로 덧대어 다진 곳까지 치면 7m에 달한다. 외벽 바깥 바닥에는 성벽 기초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1.5~2m정도 너비로 판석을 깔아 보축 하였다. 성벽 안쪽으로는 지대석을 얹고 30cm 뒤로 물려 성벽을 쌓았는데 외벽 면석은 대형의 판돌로 세워쌓기와 눕혀쌓기 하였다. 외벽 면석에서 안쪽으로 2.5m 정도는 비교적 큰 돌로 채우고 있으며 내벽으로 갈수록 그 보다 작은 크기의 돌을 사용하고 있다. 내벽 석축의 성 안쪽으로는 너비 1m~1.5m 정도로 성벽 위까지 흙으로 경사지게 다져 마무리하였다.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대시키는 시설인 해자가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