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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 경주 명활산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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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붕괴 방지를 위한 기단보축(基壇補築)이 확인된 명활산성
이름 경주 명활산성
시대 신라
분류 석성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일원
경주 명활산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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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반설명
명활산성(사적 제 47호)은 북쪽 해발 252m 산정의 `흰등山`과 그 서쪽의 `장군봉`을 두르면서 골짜기를 감싼 형태의 포곡식성으로 길이는 약 4.5km이다. 진흥왕(眞興王) 12년(55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명활산성작성비에 적혀 있다. 이 산성은 도성의 동쪽 수비를 담당하는 나성(성의 외곽)으로 나성 중에서는 처음 돌로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자비마립간 18년(475년) 1월부터 소지마립간 10년(448년) 1월까지는 임금이 거쳐하는 행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명활산성작성비에 의하면 축성 당시의 높이는 10보였다고 하지만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으며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으로 자른 돌을 이용하여 줄눈쌓기 하였으며 곳에 따라 높이 1.1m~1.8m, 너비 3m~3.7m 정도의 성벽이 확인되고 있다. 성벽 바깥 바닥부분에서는 성벽붕괴방지를 위해 바닥부분을 보충해서 쌓은 기단보축이 확인되었다.
북쪽 성 외벽 아랫부분에서는 성 바깥 북쪽으로 약 13m 떨어진 지점에서 호안석축(호수나 하천 등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돌벽)으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확인되었다. 북쪽 성벽 일부 구간에 한정하여 축조한 것으로 월성해자와 같이 물을 쓰기 위한 연못으로 보고 있다. 성내에는 문지 7개소, 수구문지 4개소, 건물터로 추정되는 대지 6개소가 확인되었는데 문지와 수구문지는 성벽이 붕괴되면서 덮이거나 파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건물터에도 초석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개소뿐이며 나머지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 밖에 연못이 2개소 남아 있으나 현재는 매몰된 상태이다.

축조과학
성벽은 25㎝~55㎝×20㎝~45㎝ 크기의 화강석재를 약간 가공하여 단을 이루면서 줄눈쌓기로 내·외면을 쌓고 안쪽에 잡석으로 뒤채움(돌담 등의 틈에 잡석 등을 채우는 것) 하였다. 성벽 내측에는 너비 4m 내외의 통로(通路)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벽 순찰로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 외벽의 아랫부분에는 신라성벽의 특징적인 구조물인 너비 3m, 높이 3.64m 규모의 69~70도 정도 경사진 기단보축이 확인되었다. 기단보축성벽은 성돌과 비슷한 크기의 형태가 가지런하지 않은 석재로 단면이 삼각형을 이루도록 면을 맞춰 쌓았다. 이 시설은 석축성벽이 돌의 무게 때문에 성의 아랫부분에 전달되는 압축력과 성벽 내면에서 밀어내는 압력으로 인하여 성벽이 쉽게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안한 것이다. 기단보축 성벽이 확인되는 신라성곽으로는 보은 삼년산성, 대전 계족산성, 함안 성산산성, 창령 목마산성, 문경 고모산성, 용인 할미산성, 이천 설성산성, 여주 파사산성, 안성 죽주산성, 서울 아차산성, 파주 칠중성, 포천 반월산성 등이 있다.

감수 : 나동욱 박사
안내
상기 내용은 2015년 전문가 감수를 받아 제작된 자료로 최신내용과 상이할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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